진통제는 다 마약성이 아니다. 아세트아미노펜과 이부프로펜처럼 익숙한 진통제는 비마약성이고, 모르핀·펜타닐 같은 오피오이드는 진통제의 한 갈래다. 진통제라는 이름은 ‘통증을 줄이는 일을 한다’는 뜻이다. 같은 일을 맡았다고 일하는 방법까지 같지는 않다. 미국치과의사협회(ADA)의 진통제 분류
그렇다면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왜 어떤 진통제는 아픔을 덜어주면서 중독 위험도 만드는 걸까?” 몸속에 있는 통증 조절 장치를 따라가면 그 이유가 보인다. 이 글에서 ‘마약성 진통제’는 모르핀 같은 오피오이드 진통제를 가리킨다.
통증 경보를 낮추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발목을 접질렀다고 상상해보자. 다친 부위에 염증 반응이 생기고 통증을 느낀다. 이것을 이해하기 쉽게 경보 장치에 비유해보자. 경보를 덜 시끄럽게 하려면 경보가 예민하게 울리는 원인을 줄일 수도 있고, 신호가 전달되고 처리되는 과정에 개입할 수도 있다.
이부프로펜 같은 소염진통제(NSAIDs)는 통증과 염증에 관여하는 ‘프로스타글란딘’의 생성을 줄인다. 경보를 예민하게 만드는 물질이 덜 생기도록 하는 셈이다. 이름은 시험에 나올 것 같지만, 기억할 것은 ‘염증과 통증을 함께 줄이는 쪽’이라는 점이다.
아세트아미노펜은 열과 통증을 줄이지만, 소염진통제처럼 염증을 가라앉히는 약으로 쓰이지는 않는다. 진통 작용에는 중추신경계가 관여하는 것으로 보지만, 세부 작동 방식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뇌에서 작용한다’는 설명만 듣고 마약성이라고 판단해서도 안 된다. ADA의 작용 기전 설명, MedlinePlus의 일반 진통제 안내
즉, 약통 앞면에 똑같이 ‘진통’이라고 쓰여 있어도 몸속에서는 서로 다른 일을 한다.
우리 몸에는 원래 통증을 조절하는 장치가 있다
몸은 통증 신호를 받기만 하지 않는다. 스스로 그 신호를 조절하기도 한다. ‘엔도르핀’이라는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엔도르핀 같은 몸속 물질은 오피오이드 수용체에 결합해 통증을 조절한다. 수용체는 특정 물질을 알아보고 반응하는 단백질이다. 여기서는 열쇠가 들어가는 자물쇠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모르핀 같은 약도 이 수용체에 결합한다. 몸에 이미 있던 장치를 외부에서 온 열쇠로 작동시키는 셈이다. 그 결과 통증 신호의 전달과 통증에 대한 반응이 달라져 덜 아프게 느낄 수 있다. NIH의 수용체 설명, MedlinePlus의 몸속 오피오이드 설명
심한 수술 후 통증이나 암성 통증 등에서 이런 약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마약성’이라는 말이 붙었다고 치료에 쓰면 안 되는 물질이라는 뜻은 아니다. 효과와 위험을 함께 따져 쓰는 약이다. CDC의 처방 오피오이드 안내
그런데 열쇠가 통증 장치에만 작용하지 않는다
오피오이드 수용체는 통증을 조절하는 회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피오이드 약물은 뇌의 보상 체계에도 영향을 주어 강한 쾌감이나 행복감을 일으킬 수 있다. 반복 사용은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호흡을 느리게 할 수 있으며, 심한 경우 생명을 위협한다. NIDA의 오피오이드 효과와 위험, MedlinePlus의 호흡억제 설명
바로 이 점 때문에 사용을 신중하게 관리한다. 아픔을 줄이는 효과를 얻는 동안 다른 기능도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통증이 줄어드는 것과 중독되는 것이 같은 현상은 아니다. 약을 썼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에게 중독이 생겼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내성, 의존, 중독은 서로 다른 말이다
이 세 단어를 한 봉지에 담아버리면 이야기가 꼬인다.
| 말 | 뜻 |
|---|---|
| 내성 | 같은 양을 써도 이전보다 효과가 줄어드는 현상 |
| 신체적 의존 | 몸이 약에 적응해, 갑자기 줄이거나 끊으면 금단 증상이 생길 수 있는 상태 |
| 중독 | 해로운 결과가 생겨도 사용을 조절하기 어려워 계속 사용하는 상태 |
치료 목적으로 약을 쓰는 동안에도 내성이나 신체적 의존이 생길 수 있다. 그것만으로 중독이라고 진단하지 않는다. CDC도 적절한 의료 감독하에서 복용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내성·금단을 오피오이드 사용장애 진단 기준에 그대로 포함하지 않도록 설명한다. 중독 여부는 사용 행동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포함해 평가한다. CDC의 오피오이드 사용장애 진단 안내
따라서 오피오이드를 복용 중이라면 ‘의존이 무서우니 오늘부터 뚝 끊자’고 혼자 결정하지 말고, 처방한 의료진과 감량 여부와 방법을 상의해야 한다. CDC의 지속 치료 안내
많이 아프면 무조건 마약성 진통제가 더 좋을까?
진통제를 게임 속 무기처럼 ‘일반 → 희귀 → 전설’ 순서로 놓으면 이해하기는 편하다. 하지만 통증 치료는 그렇게 한 줄로 정렬되지 않는다. 얼마나 아픈지와 함께, 왜 아픈지도 중요하다.
치통이 좋은 예다. 미국치과의사협회의 2024년 청소년·성인 지침은 발치 후 급성 통증과 치과 치료 전 일시적인 치통 관리에서 비오피오이드 약물을 우선하도록 권고한다. 이부프로펜 같은 소염진통제를 단독으로 쓰거나 아세트아미노펜과 병용하는 방식이다. 오피오이드는 우선 치료가 충분하지 않거나 소염진통제를 쓸 수 없는 상황 등에서 고려한다. ‘더 센 약’이라는 인상보다 그 통증에 맞는 방법이 중요하다는 사례다. ADA의 급성 치과 통증 지침 설명
물론 비마약성이라고 마음 놓고 많이 먹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아세트아미노펜은 과량 복용하면 간을 손상시킬 수 있고, 소염진통제는 위장 출혈이나 신장 문제 등을 일으킬 수 있다. 감기약과 진통제에 같은 성분이 겹치기도 한다. 실제 복용은 제품 설명과 의료진·약사의 안내를 따라야 한다. NHS의 아세트아미노펜 안내, NHS의 소염진통제 안내
다음에 약통에서 ‘진통제’라는 말을 보면, 한 칸 더 내려가 성분 이름을 보자. 그 한 줄이 이 약이 어떤 방식으로 아픔을 줄이고,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알아보는 출발점이다.